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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최애, 타오르다 推し、燃ゆ

coramdeo2021 2021. 8. 10. 02:48

출판사 미디어 창비에서 출간되는 일본 소설 「최애, 타오르다」 가제본을 읽었다.

19세에 등단해 동시에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우사미 린은

21세에 두 번째 소설 「최애, 타오르다」로 2021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작가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최애, 타오르다」는 2020년 여름 가와데쇼보 문예지 「분게이」에 발표되자마자

SNS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연재 종료와 동시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우사미 린은 1999년생으로 현재 대학생이다.

2019년 「엄마」로 문예상을 받으며 등단하여 2020년 사상 최연소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과 언론의 주목을 뜨겁게 받고 화제의 신인 소설가라고 한다. 

2020년에 9월에 출간한 「최애, 타오르다」는 2021년 1월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후

일본 서점가의 1위를 줄줄이 꿰찼으며, 2020년 11월부터 5월까지 약 6개월간의 일본 내 도서 판매 집계 결과 1위,

누계 발행부수 50만 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아사이 료(148회 나오키상 수상작 「누구」 작가)는

"세태를 생생하게 그려낸 걸작. 미래 고고학자가 꼭 발굴해주길 바란다."라고 했고,

 

히라노 게이치로(12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일식」 작가)는 

"강력히 추천한다. 스물한 살, 감탄스러운 재능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MZ세대를 이해할 단 한 권의 소설로 일컬어지며,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이 소설은 제목부터 독특하다.

 

이 소설의 원제 '推し、燃ゆ'에서 推し(오시)는 'す'(추천하다)의 명사형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응원하고 싶은 무언가를 일컫는다. 우리말로는 '최애'에 가깝다. 燃ゆ(모유)는 '燃ゆる'(타오르다)에서 온 말로 불길이 활활 타오르거나 사랑, 분노 등의 감정이 타오르다, 불빛이 빛나다라는 뜻이다.

 

'최애가 불타버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사전적 의미 외에 온라인상에서 비난, 비판 등이 거세게 일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최애', '덕질', '덕후' 같은 단어와는 거리감이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덕질과 비슷한 류의 행위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날 갑자기 한 가수를 향해 열렬한 덕질을 시작한 동기를 만나 낯선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을 읽은 기분과 비슷했다. 생소한 제목, 소재,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최애, 타오르다 推し、燃ゆ

일상의 속도가 남들보다 좀 늦는 고등학생 아카리와 그의 최애, 혼성 아이돌 그룹 '마자마좌'의 멤버 우에노 마사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카리는 마사키의 모든 표정과 언어를 블로그에 해석하는 일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살아간다. 블로그 포스트의 조회수를 의식하고, 최애를 공유하는 팬들과 온라인상에서 소통하는 내용들은 이 세대의 모습이었다.

 

"살아가니까 대단하다고 들렸어, 순간." p.11 

 

이 문장은 아카리가 친구의 말을 잘못 듣고 한 말인데, 살아가는 것이 대단한 세대가 되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이 세대는 '애착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세대가 되었다. 솔직히 얼마 읽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이렇게 유치한 내용이? 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읽어 내려 갈수록 문장에 담겨 있는 이 세대에 대한 생각들로 꽉 채워졌다. 아카리의 속도, 마사키의 돌발 행동, 아카리의 해석, 아카리 가족들의 반응, 아카리의 선택, 이후의 아카리의 삶,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옮고 그름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어떤 결론에 닿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니까.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네버랜드에 가자. 코끝이 찡했다. 나를 위한 말 같았다. 공명한 목에서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소년의 발그스름한 입에서 나온 말이 내 목에서도 같은 말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말 대신 눈물이 차올랐다. 무게를 짊어지고 어른이 되는 것을 괴롭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누군가가 힘주어 말해준 것 같았다. p18

 

다들 어렵지 해내는 평범한 생활도 내게는 쉽지 않아서, 그 여파 때문에 구깃구깃 구겨져 괴롭다. 그래도 최애를 응원하는 것이 내 생활의 중심이자 절대적인 것이라는 점만은 세상 그 무엇보다 명확했다. 중심이 아니라 척주랄까. p.44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혹은 무대와 객석에는 그 간격만큼의 다정함이 있다. 상대와 대화하느라 거리가 가까워지지도 않고 내가 뭔가 저질러서 관계가 무너지지도 않는, 일정한 간격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끝없이 느끼는 것이 평온함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최애를 응원할 때, 나라는 모든 것을 걸고서 빠져들 때, 일방적이라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충족된다. p.69

 

오후, 전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어딘지 태평하고 한가로워 보일 때가 있는데, 아마도 '이동하는 중'이라는 안심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이동하지 않아도 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안도, 그러니까 속 편하게 휴대폰을 보거나 잘 수 있다. p.83

 

한숨은 먼지처럼 거실에 쌓이고, 훌쩍이는 울음은 마룻바닥 틈이나 장롱 표면에 스며들었다. 난폭하게 잡아 끈 의자나 문 여닫는 소리가 퇴적되고 이 가는 소리나 잔소리가 축축하게 계속 떨어지면서 먼지가 쌓이고 곰팡이가 생기며 집은 조금씩 낡아가는지도 모른다.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집은 오히려 붕괴를 갈망한다. 할머니의 부고는 바로 그럴 때 들렸다. p.85

 

욕조에 몸을 담그고, 들고 온 휴대폰을 봤다. 어디에 가더라도 최애가 없으면 불안했다. 요 며칠간 이 네모난 기계가 네모난 내 방이 된 기분마저 든다. p.91

 

모두가 걷는다. 아이는 갓난아기를 태운 유아차를 추월했다가 따라잡혔다가 하면서 장갑을 낀 손바닥에서 무언가를 흩뿌리는 듯이 걷고, 늙으면 늙을수록 무거운 것을 떨어뜨리지 않고 옮기려는 듯이 지면과 상체가 평행한 상태로 걷는다. p110

 

"오늘도 지구는 둥굴고······

일은 끝이 없고······

그래도 최애는 고귀해!"

 

 

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미디어 창비 출판사

 

소중한 책을 보내주신 미디어 창비 출판사 감사합니다.